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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 겨울나그네

클래식 / 낭만 · 1962

슈베르트: 겨울나그네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 / 제럴드 무어

이 음반을 듣는 이유

바리톤과 피아노가 같은 풍경을 다르게 말하며, 스물네 곡의 반복과 급격한 전환으로 겨울 여행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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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곡 · 미리 듣기

앨범 이야기

작품과 이 연주

《겨울나그네》의 첫걸음은 가수가 혼자 떼지 않는다. 피아노가 걷는 듯한 움직임을 만들고, 목소리는 그 위에서 떠나는 사람의 말을 꺼낸다.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의 바리톤과 제럴드 무어의 피아노를 함께 생각하면, 이 작품은 비슷하게 슬픈 노래 스물네 개보다 훨씬 많은 표정을 갖는다. 화자가 잠시 기대하는 것과 음악이 다시 보여 주는 현실이 어긋나는 순간마다 여행의 방향이 달라진다.

슈베르트는 빌헬름 뮐러의 시에 곡을 붙여 1827년 두 부분에 걸쳐 연가곡 D911을 완성했다. 여기서는 1962년 11월 베를린에서 녹음한 피셔디스카우와 무어의 EMI 계통을 듣는다. 현재 제공판에는 1963년과 2004년의 권리 표기가 함께 있으며, 전체 24곡은 약 71분 27초다. 같은 가수와 피아니스트의 1955년 녹음이나 다른 반주자와의 재녹음과 구별해야 한다. 사람 이름이 같아도 모든 《겨울나그네》가 같은 해석과 같은 음원인 것은 아니다.

풍경은 피아노에도 있다

가사에서 나무와 강, 새가 나타난다고 피아노가 단순히 효과음만 더하는 것은 아니다. 반복되는 움직임과 음형은 화자가 풍경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까지 바꾼다. 「Gute Nacht」의 걸음 같은 흐름과 「Frühlingstraum」에서 꿈과 깨어남이 부딪치는 장면은 같은 방식으로 들리지 않는다. 노래의 문장이 끝나도 피아노가 이어지는 곳에서는 방금 들은 말에 다른 결론이 붙는 듯 느껴질 수 있다. 두 연주자 중 한쪽만 따라가면 이 관계의 절반을 놓치게 된다.

뒤로 갈수록 무조건 조용해지지 않는다

여정이 진행된다고 감정이 일정한 속도로 빠져나가는 것은 아니다. 뒤쪽에도 짧고 거센 「Der stürmische Morgen」, 자신을 다잡는 「Mut!」처럼 다른 태도의 곡들이 놓인다. 이 판에서 전자는 약 52초, 후자는 약 1분 24초로 긴 노래들 사이에 날카로운 구획을 만든다. 전체를 하나의 사건이 차례로 일어나는 줄거리보다 기억과 꿈, 반응의 연속으로 받아들이면 이러한 변화가 자연스럽다. 어둡다는 말은 출발점일 수 있어도 모든 곡의 속도와 표정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마지막에는 다른 음악가가 서 있다

마지막 「Der Leiermann」에는 허디거디를 켜는 노인이 나타난다. 피아노의 제한된 반복과 길게 남는 음은 첫 곡의 걸음과 다른 종류의 계속됨을 만든다. 선율이 전혀 없는 곡이라거나 화자의 미래가 확정되는 결론이라고 단정하기보다, 노래하는 사람이 다른 연주자를 만나는 장면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듣는 경험은 유익하지만 그것만이 유일한 입문법은 아니다. 첫 곡과 끝 곡을 먼저 익힌 뒤 사이의 변화를 따라가도 스물네 곡의 관계는 조금씩 드러난다.

곡으로 읽는 앨범

「Gute Nacht」의 걸음과 「Der Leiermann」의 반복을 비교한 뒤, 중간 곡들에서 꿈과 현실이 바뀌는 지점을 따라가 보자.

다른 관점으로 들어보기

먼저 작품의 흐름을 따라 듣고, 다시 들을 때는 선율의 호흡과 악기 사이의 균형에 집중해 보세요. 작품의 특징과 이 연주만의 선택을 나누어 들으면 비교가 더 쉬워집니다.

  1. Gute Nacht

    피아노가 일정한 움직임을 마련한 뒤 바리톤이 들어오며 여행이 시작된다. 걷는 듯한 반주가 계속되어도 노래의 감정까지 같은 상태로 고정되지는 않는다. 잠시 다른 기억이 스쳐 지나가는 듯한 밝음 뒤에, 피아노의 끝맺음이 처음의 어두운 성격을 다시 드러낸다. LA 필의 작품 해설이 짚는 이 대비는 가사 요약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음악의 역할을 보여 준다. 이 제공판에서는 약 5분 22초다. 첫 음에서 마지막 음까지 발소리라는 한 가지 비유로 덮기보다, 같은 움직임 위에서 목소리의 문장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보자. 무어의 피아노가 노래의 끝을 받아 이어 가는 부분도 곡의 일부다. 출발을 선언한 가수의 말과 그 뒤에 남은 악기의 소리를 함께 기억하면, 다음 곡으로 넘어갈 때 이미 한 장면이 닫혔다는 감각이 생긴다.

    참고 자료 · Los Angeles Philharmonic — Herbert Glass on Winterreise structure and piano writing
  2. Der Leiermann

    마지막에 나타나는 거리의 연주자는 이 여행을 설명해 주는 해설자가 아니다. 허디거디의 지속음과 반복을 떠올리게 하는 피아노가 작은 범위의 음악을 이어 가고, 바리톤은 그 앞에 선 화자의 말을 전한다. 화려한 마지막 장면을 기대하면 오히려 남아 있는 재료의 적음이 크게 느껴진다. 이를 선율도 감정도 완전히 사라진 상태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계속 돌아가는 음악과 그 음악가에게 다가가는 사람의 관계가 결말의 질문을 만든다. 약 3분 28초의 이 곡을 첫 곡과 나란히 놓으면, 움직임이 있다는 사실과 어디론가 나아간다는 느낌이 반드시 같지는 않다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마지막에 음량을 크게 늘려 긴 여정을 정리하지 않는 선택이 중요하다. 피아노와 목소리가 적은 재료로 어떻게 끝을 남기는지 살펴보자.

    참고 자료 · Barbican — A Winter’s Journey, programme notes

이어서 들을 음반

분덜리히와 기젠의 슈만 《시인의 사랑》에서는 또 다른 시와 피아노의 결말을 만난다. 같은 연가곡 형식이라도 노래가 멈춘 뒤 악기가 맡는 역할은 달라질 수 있다.

슈만: 시인의 사랑 ↗
참고 자료와 편집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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